시리즈 A까지 여섯 달이 남았는데 통장은 넉 달치였고, 기존 투자자가 내민 150만 달러짜리 서류에는 SAFE에는 없던 두 단어, 이자와 만기가 있었습니다

열 명을 뽑고 나니 두 달이 비었습니다. 기존 투자자의 브릿지는 SAFE가 아니라 전환사채였고, 연 8%와 18개월이 적혀 있었습니다. 왜 빚인가, 왜 100만 달러까지만인가, 그리고 돈을 빌려주는 쪽이 회사의 이사일 때 이사회는 어떻게 열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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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A까지 여섯 달이 남았는데 통장은 넉 달치였고, 기존 투자자가 내민 150만 달러짜리 서류에는 SAFE에는 없던 두 단어, 이자와 만기가 있었습니다

ATTJ컴퍼니 연대기 #16 · 읽기 약 5분


열 명을 뽑고 나니 돈이 빨리 나갔습니다. 에밀리가 만든 현금 흐름표의 맨 아랫줄, 잔고가 0이 되는 달은 넉 달 뒤였습니다. 제이가 잡아 둔 시리즈 A 일정은 여섯 달 뒤. 매출은 계획대로 늘고 있었지만 두 달이 비었습니다.

제이는 투자자 이사인 성민에게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성민의 답은 다음 날 왔습니다. Jun Ventures가 100만 달러, 시드 때 SAFE로 들어온 투자자가 50만 달러. 합쳐 150만 달러를 브릿지로 넣겠다는 것이었고, 조건은 두 장짜리 서류로 왔습니다. 제목은 전환사채(Convertible Note)였습니다.

제이는 SAFE를 받아 봤고 우선주 라운드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 서류에는 그 둘에 없던 단어가 둘 있었습니다. 연 8%의 이자, 그리고 18개월의 만기.

왜 SAFE가 아닌가

제이의 첫 질문은 그것이었습니다. 시드 때처럼 SAFE로 하면 되지 않는가.

변호사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SAFE는 회사가 돈을 받고 "다음 라운드 때 주식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서류이고, 빚이 아닙니다. 전환사채는 빚입니다. 다음 라운드가 오면 주식으로 바뀌지만, 오지 않으면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돈입니다. 그리고 회사가 잘못되면 빚은 주식보다 먼저 받습니다.

기존 투자자가 브릿지를 넣을 때 SAFE보다 전환사채를 고르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브릿지는 회사가 어려울 때 들어가는 돈이라 투자자는 잘 안 됐을 때의 순서를 신경 쓰고, 이자는 기다리는 동안의 값이며, 만기는 "언제까지 다음 라운드를 할 것인가"를 서류에 적어 두는 장치입니다. 변호사는 SAFE로 하자고 다시 제안할 수는 있지만, 이자와 만기가 있다는 것 자체는 브릿지에서 이상한 조건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조건의 나머지는 제이가 아는 것이었습니다. 시리즈 A가 500만 달러 이상으로 열리면 그 라운드 가격의 20% 할인으로 주식이 되고, 가격 상한은 시드 라운드의 회사 가치와 같은 2,000만 달러. 만기까지 라운드가 없으면 투자자가 골라서 상한 가격으로 주식으로 바꾸거나 돈으로 돌려받는다.

제이가 물었습니다. 18개월 안에 라운드를 못 하면 150만 달러에 이자까지 갚으라는 것인가. 변호사는 서류상으로는 그렇고, 실제로는 그 시점에 연장하거나 주식으로 바꾸는 협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그 협상에서 서류를 쥔 쪽은 투자자라는 것, 그래서 만기는 숫자가 아니라 협상의 자리를 정하는 조항이라는 것이 변호사의 말이었습니다.

100만 달러의 이유

제이가 궁금했던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왜 Jun Ventures는 150만 전부가 아니라 100만인가.

성민의 답은 펀드 쪽 사정이었습니다. Fund I은 LP들과의 계약에서 한 회사에 펀드의 15%, 300만 달러까지만 넣을 수 있고, 시드 때 200만 달러를 넣었으니 남은 자리가 100만 달러였습니다. 투자자가 더 넣고 싶어도 못 넣는 선이 있다는 것을 제이는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50만 달러는 시드 때의 SAFE 투자자에게 갔고, 같은 조건이었습니다.

이사가 돈을 빌려주는 날

변호사가 서류보다 먼저 정리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거래에서 돈을 빌려주는 사람 중 하나가 회사의 이사라는 점이었습니다.

성민은 Jun Ventures의 GP이면서 ATTJ컴퍼니의 이사입니다. 회사가 Jun Ventures에서 돈을 빌리는 안건은 성민 입장에서 자기 펀드와 자기가 이사인 회사 사이의 거래입니다. 이런 거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하려면, 이해관계가 있는 이사는 조건을 전부 밝히고 표결에서 빠지며, 이해관계가 없는 이사들이 따로 심사해서 승인해야 나중에 "이사가 자기 편한 조건으로 회사 돈을 가져갔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델라웨어는 그 절차를 지킨 거래에 보호를 줍니다.

그래서 일은 이렇게 진행됐습니다. 성민은 Jun Ventures의 조건과 Fund I의 한도를 이메일로 이사 전원에게 보냈고, 그 뒤의 논의에서는 빠졌습니다. 제이와 마커스와 독립이사 린다, 셋이 따로 통화했습니다. 린다가 한 일은 둘이었습니다. 하나는 비교였습니다. 외부에서 같은 돈을 구하면 조건이 어떤지, 제이가 받아 둔 다른 두 곳의 조건을 옆에 놓았습니다. 하나는 이자 10%에 할인 25%였고, 하나는 상한이 더 낮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조건의 전환사채를 시드 때의 다른 투자자들에게도 참여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더 들어왔고, 합계는 170만 달러가 됐습니다.

회의는 따로 열리지 않았습니다. 변호사가 서면 동의서(Board Consent)를 만들었고, 거기에는 성민이 이해관계를 밝혔다는 사실, 외부 조건과 비교했다는 사실, 다른 투자자에게도 같은 조건을 열었다는 사실이 적혔습니다. 이 안건의 승인 서명은 제이, 마커스, 린다 셋뿐이었고, 성민의 이름은 승인한 이사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밝힌 이사로 적혔습니다. 변호사는 그 서류가 조건표보다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몇 년 뒤 누군가 이 거래를 들여다볼 때 읽는 것은 조건이 아니라 누가 빠졌고 누가 승인했는지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기억

제이는 한국에서 전환사채를 봤습니다. 기존 투자자가 다음 라운드 전에 돈을 넣을 때 한국에서도 전환사채를 많이 씁니다. 그런데 "돈을 빌려주는 쪽이 이사"라는 장면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투자자가 회사의 이사로 들어오는 일이 흔하지 않아서, 투자자의 브릿지는 그냥 투자자와 회사 사이의 거래였고 이사회에서 누가 빠질 일도 없었습니다.

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한국 상법도 이사나 그 이사가 관계된 쪽이 회사와 거래하려면 미리 이사회에 중요한 사실을 밝히고 이사 3분의 2 이상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그 거래의 내용과 절차가 공정해야 한다고 적어 두었고, 이해관계가 있는 이사는 그 표결에 끼지 못합니다. 다만 투자자가 이사가 아니면 그 조항이 작동할 일이 없었을 뿐입니다. 미국에서는 리드 투자자가 이사 자리를 받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그 투자자가 돈을 더 넣는 순간부터 같은 사람이 두 자리에 앉게 됩니다. 제이가 처음 본 것은 전환사채가 아니라 그 두 자리였습니다.

에밀리는 현금 흐름표의 맨 아랫줄을 고쳤습니다. 잔고가 0이 되는 달은 아홉 달 뒤로 밀렸고, 시리즈 A까지는 여섯 달이었습니다. 제이는 그 옆에 날짜 하나를 더 적었습니다. 18개월 뒤, 만기.


실제로는 이렇게 나타납니다

시리즈 A 전의 브릿지는 기존 투자자가 전환사채(Convertible Note)로 넣는 경우가 많고, 이자(연 6~8% 수준이 흔함), 만기(12~24개월), 다음 라운드 가격 대비 할인(15~25%), 가격 상한(valuation cap), 적격 자금조달 요건(Qualified Financing, 일정 금액 이상의 우선주 라운드), 만기 시 전환 또는 상환 선택권, 회사 매각 시 원금 배수 지급 조항 등으로 구성됩니다. SAFE로 브릿지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어느 쪽이든 조건은 협상으로 정해지는 것이지 정해진 표준은 아닙니다. 만기에 상환하는 경우는 드물고 연장이나 전환으로 정리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협상에서 채권자의 지위가 작동합니다.

기존 투자자가 지명한 이사가 있는 회사가 그 투자자에게서 돈을 빌리는 거래는 이사의 이해관계 거래입니다. Delaware General Corporation Law §144(2025년 개정)는 이해관계 이사가 중요한 사실을 공개한 뒤 이해관계 없는 이사 과반(이해관계 없는 이사가 이사회 과반이 아니면 2인 이상의 위원회)이 승인하거나, 이해관계 없는 주주가 승인하거나, 거래가 공정하면 이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 안전항을 두고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회의 대신 서면 동의서(Board Consent)로 처리하되 이해관계 이사의 공개와 불참을 문서에 남기고, 외부 조건과 비교하며, 다른 기존 투자자에게 같은 조건으로 참여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성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쓰입니다.

한국 상법 제398조는 이사 등이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거래하려면 미리 이사회에 중요사실을 밝히고 이사 3분의 2 이상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거래의 내용과 절차가 공정해야 한다고 정하고, 제391조 제3항이 준용하는 제368조 제3항에 따라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이사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전환사채는 제513조에 따라 이사회가 발행을 결정하되, 주주 외의 자에게 발행하는 경우 정관에 규정이 없으면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합니다.

이 글의 용어

  • 전환사채(Convertible Note): 회사가 돈을 빌리고, 다음 라운드가 오면 그 빚을 주식으로 바꾸기로 한 서류. SAFE와 달리 이자와 만기가 있는 빚입니다.
  • 만기(Maturity): 빚을 갚기로 한 날. 그날까지 다음 라운드가 없으면 투자자가 상환이나 전환을 고를 수 있게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 이해관계 거래(Interested Transaction): 이사나 그 이사가 속한 쪽이 회사와 하는 거래. 그 이사가 빠진 승인과 기록이 필요합니다.

더 깊이 보려면


다음 화는 시리즈 A입니다. 새 리드 투자자의 텀시트가 왔는데, 시드 때 제이가 "다음에 고치자"고 넘긴 조항 하나가 이번에는 가격보다 먼저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습니다.

이 연재의 회사·펀드·인물은 가상이며, 실존 회사·인물·사건과 무관합니다.


본 시리즈는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법률 문제는 Venture Pacific Law Group(info@ventureplg.com)으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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