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부장이 보낸 사이드레터 요구 목록은 열한 줄이었고, 변호사는 그중 한 줄에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한국 앵커 LP의 사이드레터 요구 열한 줄. 그냥 주는 것, 협상하는 것, 못 주는 것. 그리고 "기술 자료 정보권" 한 줄이 펀드의 모든 딜을 느리게 만드는 이유

Share
박 부장이 보낸 사이드레터 요구 목록은 열한 줄이었고, 변호사는 그중 한 줄에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Jun Ventures 연대기 #4 · 읽기 약 6분


성민이 박 부장에게 보낸 이메일 두 통, "미국에서 GP를 믿는 근거"에 대한 답장은 목록이었습니다.

청운캐피탈이 Fund I의 앵커 LP로 500만 달러를 넣는 조건. 제목은 "출자 조건(Side Letter 요청사항)"이었고, 번호가 1번부터 11번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성민은 전 직장에서 LP 쪽 사이드레터를 수십 통 봤지만, 받는 쪽에 앉아서 읽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열한 줄 중 절반은 아는 것이었고, 절반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계약에 서명하고 다른 권리를 갖는 법

사이드레터(Side Letter)는 LP 전원이 서명하는 유한책임조합계약(Limited Partnership Agreement, LPA)과 별도로, GP가 특정 LP에게만 써주는 편지입니다. LPA를 고치면 LP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고 모든 LP에게 같은 조건이 적용되니, 한 LP의 사정에 맞는 조건은 편지로 따로 씁니다. 앵커 LP가 가장 긴 편지를 받고, 뒤에 들어오는 LP들은 그 편지를 기준으로 자기 편지를 요구합니다.

변호사는 열한 줄을 세 묶음으로 나눴습니다. 그냥 주는 것, 협상하는 것, 못 주는 것.

그냥 주는 것

1번부터 4번까지는 변호사가 보자마자 "표준"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법령상 보고 의무에 필요한 정보를 요청 시 제공할 것. 한국의 외국환·세제·감독 규정이 바뀌면 GP가 합리적으로 협조할 것. 제재 대상·자금세탁 관련 확인서. 연례 총회 참석권.

성민은 1번이 왜 필요한지 박 부장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 기관이 해외 펀드에 출자하면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반기마다 역외금융회사 현황을 한국은행에 보고해야 하고, 그 보고서에 들어갈 숫자는 GP가 주지 않으면 구할 데가 없습니다. 미국 LP는 요구하지 않는 조항이지만, 한국 LP에게는 출자의 전제 조건입니다. 미국 GP가 처음 보고 당황하는 조항이기도 합니다. 성민은 당황하지 않았고, 그것이 한국 LP를 받는 펀드의 이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협상하는 것

5번부터 8번까지는 문구 싸움이었습니다.

공동투자 기회의 우선 제공. 박 부장은 "제공한다"를 원했고, 변호사는 "기회가 있을 때 고려한다"로 썼습니다. 차이는 성민이 다음 딜에서 공동투자 자리를 다른 LP에게 줬을 때 청운캐피탈이 계약 위반을 주장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지분 양도 시 GP 동의 요건의 완화. 청운캐피탈이 나중에 LP 지분을 국내 다른 기관에 팔면 한국은행에 즉시 보고할 의무가 생기는데, 그때 GP 동의 절차가 길어지면 보고 기한을 못 맞춥니다. 변호사는 국내 기관 간 양도에 한해 동의 기간을 짧게 하는 것으로 받았습니다. 100명 한도를 세는 조항은 그대로 두고.

7번, 관리보수. 500만 달러는 2,500만 달러 펀드의 20%이고, 그 규모의 앵커에게 보수를 깎아주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은 일입니다. 다만 깎아준 숫자는 다른 LP들이 알게 될 수 있습니다. 이유는 8번에 있었습니다.

8번, 최혜국 대우(Most Favored Nation, MFN). 다른 LP가 받은 조건 중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청운캐피탈도 받겠다는 조항입니다. 성민은 앵커 LP에게 당연히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변호사가 짚은 것은 방향이었습니다. 이 조항이 있으면 성민이 앞으로 어떤 LP에게 어떤 편지를 써주든 최소한 그 요약된 내용이 청운캐피탈에게 자동으로 흘러갑니다. 열한 줄은 박 부장의 목록이 아니라 Fund I 사이드레터 전체의 바닥이 됩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출자 규모 구간을 두어, 자기보다 작은 LP가 받은 조건까지만 가져갈 수 있게 합니다. 청운캐피탈은 가장 큰 LP라서 이 구간이 당장은 의미가 없지만, 나중에 미국 FoF가 더 큰 금액을 넣고 더 긴 편지를 받으면 그때 의미가 생깁니다.

못 주는 것

변호사가 동그라미를 친 것은 9번이었습니다. "포트폴리오 회사의 기술 및 사업 자료에 대한 정보 접근권."

박 부장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청운캐피탈 내부 투자심의위원회는 분기마다 "이 펀드가 어떤 회사에 왜 투자했는지"를 묻고, 그 설명에는 그 회사가 무슨 기술을 가졌는지가 들어가야 합니다. 한국 펀드에 출자할 때는 늘 받던 자료였습니다.

변호사의 답은, 이 한 줄이 Fund I의 모든 딜을 느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외국인이 미국 기술 회사에 투자하는 것을 CFIUS라는 위원회가 심사합니다. 펀드에 돈을 넣은 외국 LP는 원칙적으로 심사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펀드가 미국인 GP에 의해 배타적으로 운용될 것, 외국 LP가 투자 결정을 통제하지 못할 것, 그리고 외국 LP가 포트폴리오 회사의 중요한 비공개 기술정보에 접근하지 못할 것. 이 조건을 지키는 동안 청운캐피탈은 "돈만 넣은 투자자"이고, Jun Ventures가 AI 회사에 투자하는 것은 미국 펀드가 미국 회사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9번 조항이 들어가는 순간 그 전제가 흔들립니다. 그러면 Jun Ventures가 기술 회사에 투자할 때마다 "이 딜에 외국인의 기술정보 접근이 있는가"를 따져야 하고, 창업자의 변호사도 같은 것을 따지게 되고, 딜의 속도가 바뀝니다.

성민은 박 부장에게 전화로 설명했습니다. 투자심의위원회가 필요한 것은 "어떤 회사이고 왜 투자했는가"이지 그 회사의 소스코드나 모델 구조가 아니다. 그 설명은 재무·포트폴리오 정보의 범위에서 GP가 분기 보고서에 쓸 수 있다. 다만 기술 자료 자체에 대한 접근권을 계약에 적으면, 그 한 줄 때문에 펀드가 투자할 수 있는 회사의 범위가 좁아진다. 박 부장은 잠시 말이 없다가, 그러면 분기 보고서에 "투자 논거" 항목을 넣어달라고 했고, 변호사는 그 문구로 9번을 다시 썼습니다. 정보권은 재무 및 포트폴리오 정보에 한한다, 단 GP는 분기 보고에 각 투자의 논거를 기재한다.

10번, 개별 투자에 대한 사전 협의권도 같은 이유로 지웠습니다. LP가 개별 딜을 승인하거나 거부하는 구조는 "통제"이고, 통제는 CFIUS의 전제를 깨고, 그 전에 미국 LP들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신 특정 국가나 산업에 대한 출자 면제(excuse) 조항으로 바꿨습니다. 청운캐피탈이 투자할 수 없는 대상이 있으면 그 딜의 캐피탈콜에서 빠지는 것이지, 그 딜을 막는 것이 아닙니다.

열한 줄의 무게

11번은 보고서 언어였고, 영문 보고서에 한국어 요약을 붙이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사이드레터 초안이 나간 날, 성민은 열한 줄 중 몇 줄이 바뀌었는지 세어봤습니다. 그대로 들어간 것 넷, 문구가 바뀐 것 다섯, 지워지고 다른 것으로 대체된 것 둘. 박 부장은 초안을 받고 "이 정도면 심의 올리겠다"고 답했습니다.

성민이 전 직장에서 본 사이드레터 협상은 늘 GP가 이기는 게임처럼 보였습니다. 받는 쪽에 앉아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GP가 지키는 것은 자기 권한이 아니라 펀드가 투자할 수 있는 범위였고, 그 범위는 한 LP의 편지 한 줄로 좁아질 수 있었습니다. 9번에 동그라미를 친 변호사가 지킨 것은 성민이 아니라 아직 만나지 않은 포트폴리오 회사들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이렇게 나타납니다

CFIUS 규정(31 CFR §800.307)은 미국인 GP가 배타적으로 운용하는 펀드의 외국 LP에 대해, 자문위원회가 투자 결정을 승인·거부·통제하지 못하고, LP가 다른 수단으로 투자 결정을 통제하지 못하며, 중요한 비공개 기술정보에 접근하지 않는 등의 조건을 갖추면 LPAC 참여를 이유로 지배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사이드레터의 정보권 조항이 "재무 및 포트폴리오 정보"로 한정되는 이유가 이 조문입니다.

MFN은 실무상 클로징 뒤 GP가 사이드레터 조건 요약을 LP들에게 보내고 각 LP가 가져갈 조건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출자 규모 구간을 두어 자기 이하 규모의 LP가 받은 조건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시장 관행입니다. 한국 기관 LP의 정보권 요구는 외국환거래법상 역외금융회사 현황 보고와 내부 심사 자료 필요에서 나오며, 미국 GP에게는 낯설지만 한국 LP에게는 출자의 전제가 되는 조항입니다.

더 깊이 보려면


다음 화는 첫 클로징의 밤입니다. 목표 2,500만 달러에 모인 약정은 그 절반이 조금 넘었고, 성민은 그 숫자로 문을 열지 말지를 정해야 했습니다.

이 연재의 회사·펀드·인물은 가상이며, 실존 회사·인물·사건과 무관합니다.


본 시리즈는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법률 문제는 Venture Pacific Law Group(info@ventureplg.com)으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Read more

미국 진출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법인 설립부터 투자 유치, VC의 미국 투자까지 —
한국 창업자와 투자자를 위한 미국 법률 가이드를
새 글이 발행될 때마다 이메일로 보내드립니다.

구독 완료! ✉️

확인 이메일을 보내드렸습니다.
메일함을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