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하나를 만들려고 갔더니, 변호사는 회사 세 개를 그렸습니다

8년 다닌 회사에 사직을 말한 다음 날, 전성민은 "델라웨어 LP 설립" 한 줄을 들고 로펌에 갔습니다. 변호사는 화이트보드에 상자 세 개를 그렸습니다. 펀드, GP LLC, 관리회사. 그리고 서울의 LP 후보가 던진 첫 질문은 "GP 회사 자본금이 얼마예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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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하나를 만들려고 갔더니, 변호사는 회사 세 개를 그렸습니다

Jun Ventures 연대기 #1 · 읽기 약 8분


전성민이 8년 다닌 회사에 사직 의사를 밝힌 날은 목요일이었습니다. 금요일 아침, 그는 산타클라라의 로펌 회의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준비해 간 것은 두 장짜리 문서였습니다. 펀드 이름 Jun Ventures Fund I, 목표 2,500만 달러, 초기 B2B 소프트웨어 20개 회사에 첫 수표를 쓰는 전략, 그리고 이미 관심을 보인 LP 후보 여섯 곳의 목록. 한국 민간 캐피탈 하나, 한국 중견그룹 CVC 하나, 한국 개인 셋, 그리고 지난 8년 동안 딜을 같이 본 미국 엔젤 하나. 두 장 중 한 장은 "펀드 설립"이라는 제목 아래 항목이 하나였습니다. 델라웨어 LP 설립.

변호사는 문서를 읽고 말없이 화이트보드에 상자 세 개를 그렸습니다.

상자 세 개

첫 번째 상자가 펀드였습니다. Jun Ventures Fund I, L.P. 델라웨어 유한 파트너십. LP들이 돈을 넣는 곳이고, 포트폴리오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곳입니다. 이 상자는 성민이 생각한 그대로였습니다.

두 번째 상자는 성민이 생각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Jun Ventures GP I, LLC. 펀드의 무한책임사원, 그러니까 펀드를 대표해 서명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주체입니다. 성민은 그냥 자기 자신이 GP인 줄 알았습니다. 변호사는 성민이 아니라 이 LLC가 GP이고, 성민은 그 LLC의 매니징 멤버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유한 파트너십에서 무한책임사원은 이름 그대로 펀드의 채무에 무한책임을 집니다. 그 자리에 개인이 앉으면 펀드에서 생긴 소송이 성민의 집까지 오지만, LLC를 세워 그 자리에 앉히면 책임은 LLC 안에서 멈춥니다. 나아가 보통 펀드마다 GP LLC를 따로 만듭니다. Fund I의 문제가 Fund II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 번째 상자는 Jun Ventures Management, LLC. 관리회사입니다. 성민과 앞으로 뽑을 어소시에이트 직원이 실제로 고용되는 곳이고, 사무실 임대차 계약을 맺는 곳이고, 펀드에서 관리보수를 받는 곳입니다. 성민이 물었습니다. GP LLC가 있는데 왜 또 하나가 필요합니까.

변호사의 답은 돈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GP LLC로 들어오는 돈은 캐리, 즉 펀드 수익 중 GP 몫으로 정한 비율입니다. 관리회사로 들어오는 돈은 관리보수, 즉 매년 약정액의 일정 비율입니다. 흔히 20%와 2%라고 부르지만 정해진 숫자는 아니고, 펀드 규모와 LP 협상에 따라 달라집니다. 캐리는 투자 수익의 성격을 유지한 채 GP 멤버들에게 흘러가고, 관리보수는 급여와 임대료로 나가는 운영 자금입니다. 이 둘을 한 상자에 넣으면 세무도 회계도 얽히고, 나중에 파트너를 들이거나 내보낼 때 누가 무엇을 가져가는지가 불분명해집니다. 세 개로 나누는 것이 미국 VC의 표준이고, 사실 성민이 8년 동안 다닌 회사도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그는 그 구조를 안에서 본 적이 없었을 뿐입니다.

톰의 자리

회의 중간에 성민이 톰 갤러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두 번 창업하고 두 번 회사를 판 사람이고, 성민이 다니던 회사에서 포트폴리오 회사의 자문으로 여러 번 마주쳤습니다. 풀타임은 아니지만 Jun Ventures에 관여하고 싶어 했고, 성민도 그가 필요했습니다. 딜을 가져오고, 창업자들이 성민보다 먼저 전화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는 세 상자 중 어디에 톰을 넣을 것인지 물었습니다. 관리회사에 넣으면 직원이고 급여를 받습니다. 성민은 톰에게 급여를 줄 형편이 아니었고, 톰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톰이 받을 것은 캐리의 일부입니다.

그 캐리를 약정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톰을 GP LLC의 멤버로 넣고 운영계약에 그의 몫을 적는 것. 다른 하나는 GP LLC의 멤버는 성민 혼자 두고, 톰과는 별도의 벤처 파트너 계약을 맺어 캐리 일부를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것. 소형 펀드에서는 후자가 더 흔하고, 딜 하나에만 관여하는 벤처 파트너라면 거의 후자입니다. 성민은 톰이 펀드 전체에 관여하는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LP들에게 "이 펀드에는 톰 갤러거가 있다"고 말하려면 톰의 자리가 GP 안에 있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전자를 골랐습니다.

어느 쪽이든 몇 퍼센트를, 어떤 베스팅으로, 그가 중간에 그만두면 어떻게 되는지를 적어야 합니다. 이 문서는 LP들이 보는 문서가 아니라 성민과 톰 사이의 문서입니다. 창업자들의 주주간계약이 그렇듯, 사이가 좋을 때 써두는 것입니다.

톰의 자리는 이 회의에서 정해졌지만, 그 자리가 어떤 의미인지는 훨씬 뒤에 드러납니다.

왜 델라웨어인가

성민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사무실도 캘리포니아에 낼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펀드도 GP도 관리회사도 전부 델라웨어에 세웁니다. 성민은 이유를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LP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변호사가 든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델라웨어 파트너십법은 파트너들이 계약으로 정한 것을 거의 그대로 인정합니다. 펀드의 규칙은 법이 아니라 LPA가 정하는데, 그 LPA가 법원에서 그대로 존중되는 곳이 델라웨어입니다. 둘째, 판례가 쌓여 있습니다. 어떤 조항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수십 년의 기록이 있어서, 분쟁이 생겼을 때 결과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셋째, 모두가 익숙합니다. LP의 변호사도, 포트폴리오 회사의 변호사도, 나중에 이 펀드 지분을 살 세컨더리 매수인도 델라웨어 LPA를 읽어본 사람들입니다. 익숙하다는 것은 검토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입니다. 낯선 주의 낯선 조항 하나가 상대방 변호사의 검토 목록에 올라가는 순간 딜의 속도가 바뀌고, 속도가 바뀌면 성사 여부가 바뀌기도 합니다. 신생 펀드가 델라웨어를 고르는 것은 유리해서라기보다, 설명할 것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캘리포니아에 사무실을 두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델라웨어 법인이 캘리포니아에서 영업하면 캘리포니아에 외국 법인으로 등록하고 캘리포니아 세금을 냅니다. ATTJ컴퍼니가 겪는 것과 같은 구조이고, 그 이야기는 ATTJ컴퍼니 연대기에서 다룹니다.

한국 LP의 첫 질문

회의가 끝나고 성민은 서울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청운캐피탈의 박미영 부장. LP 후보 여섯 곳 중 가장 큰 금액을 이야기하고 있는 곳이었고, 성민이 한국에서 심사역을 하던 시절부터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박 부장의 첫 질문은 구조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GP 회사 자본금이 얼마예요? 등록은 됐고요?"

성민은 잠시 말을 멈췄습니다. GP LLC의 자본금은 사실상 없습니다. 설립 비용과 등록 대리인 비용이 전부이고, 등록이라고 할 것은 델라웨어 주에 설립 서류를 낸 것뿐입니다. 미국에서 VC 펀드의 GP가 되는 데 자본금 요건도, 인가도, 전문인력 요건도 없습니다.

박 부장이 그렇게 물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벤처투자조합을 결성하고 운용하려면 벤처투자법에 따라 벤처투자회사로 등록해야 하고, 등록 요건은 납입자본금 20억 원 이상, 차입금 비중 20% 미만, 상근 전문인력 2명 이상, 전용 사무실입니다. 한국 LP에게 "GP의 자격"은 정부가 확인해준 것이고, 그 확인 없이 펀드를 운용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반대입니다. GP가 누구인지는 정부가 묻지 않습니다. 대신 펀드가 어떤 조건을 지키는지를 묻습니다. 투자자 수, 투자자의 자격, 투자 대상의 성격, 그리고 그 조건을 지키고 있다는 신고. 규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에 붙습니다. 그 구조가 다음 화의 이야기입니다.

성민은 박 부장에게 그날 밤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화이트보드의 상자 세 개를 그림으로 다시 그리고, 미국에서 LP가 GP를 믿는 근거가 자본금이 아니라 무엇인지 두 장으로 정리했습니다. GP가 자기 돈을 얼마나 넣는지, 핵심 인력이 떠나면 펀드가 어떻게 되는지, 캐리를 받았다가 나중에 돌려줘야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전부 LPA에 들어갈 조항들이었고, 아직 한 줄도 쓰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이렇게 나타납니다

PitchBook-NVCA Venture Monitor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미국에서 클로징된 VC 펀드는 238개, 총 266억 달러였습니다. 그중 첫 펀드를 출범한 신규 운용사는 44곳, 합쳐서 18억 달러로 전체 금액의 7% 남짓입니다. 같은 기간 총액의 절반 이상을 상위 12개 운용사가 가져갔고, 펀드 하나를 결성하는 데 걸린 중위 기간은 15.3개월로 2024년의 12.6개월에서 늘어 10년 넘는 기간 중 가장 길었습니다. Jun Ventures가 서 있는 출발선이 이 숫자들입니다.

더 깊이 보려면


다음 화는 규제의 문입니다. 자본금도 인가도 없는 GP가 미국에서 펀드를 운용할 수 있는 이유, 그리고 그 대신 지켜야 하는 숫자 100과 서류 한 장.

이 연재의 회사·펀드·인물은 가상이며, 실존 회사·인물·사건과 무관합니다.


본 시리즈는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법률 문제는 Venture Pacific Law Group(info@ventureplg.com)으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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