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 두 장으로 40만 달러를 받은 날, 캡테이블의 주식 수는 한 주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8%는 이미 나갔습니다
주식을 발행하지 않는 투자 서류 SAFE. 서명하는 날 정해지는 지분율, 새 SAFE가 창업자만 희석하는 이유, 그리고 세 사람이 정한 숫자 하나
ATTJ컴퍼니 연대기 #6 · 읽기 약 6분
파일럿 계약이 성사되고 두 주 뒤, 엔젤 두 사람이 먼저 연락해 왔습니다. 한 사람은 에밀리의 전 직장에서 알던 투자자로 25만 달러, 다른 한 사람은 마커스의 전 상사로 15만 달러. 두 사람 다 같은 말을 했습니다. "SAFE로 하죠. 캡은 500만."
제이는 서울에서 그 문장을 세 번 읽었습니다. 한국에서 투자를 받을 때는 주당 가격을 정하고, 신주를 발행하고, 등기를 했습니다. SAFE는 그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서류였습니다.
주식이 아닌 서류
변호사의 설명은 짧았습니다.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는 지금 돈을 받고 나중에 주식을 주기로 하는 계약입니다. 지금은 주식을 발행하지 않습니다. 이자도 없고 만기도 없어서 빚도 아닙니다. 다음에 가격을 정하는 투자 라운드가 열리면, 그때 정해진 가격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우선주로 바뀝니다. 유리한 조건을 정하는 숫자가 밸류에이션 캡(Valuation Cap)이고, 두 엔젤이 말한 500만 달러가 그것입니다.
마커스가 물었습니다. 그냥 지금 가격을 정해서 주식을 팔면 안 됩니까. 변호사의 답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지금 가격을 정할 근거가 거의 없다는 것. 매출은 파일럿 하나이고, 이 단계의 회사 가치는 숫자라기보다 협상의 결과이고, 그 협상을 40만 달러 때문에 하기에는 양쪽 다 부담입니다. 다른 하나는 절차입니다. 가격을 정하는 라운드는 우선주의 권리를 정하는 정관 개정, 투자계약서, 주주간계약까지 서류 뭉치가 따라오고, 그 서류를 만들고 협상하는 시간과 비용이 이 금액에는 맞지 않습니다. SAFE는 그 두 가지 결정을 다음 라운드로 미루는 서류입니다. 다섯 장짜리 표준 서식이고, 이사회 결의 하나와 서명 두 개로 끝납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 시드 투자의 기본값이 됐습니다.
에밀리가 서명을 받고 송금을 확인한 날 밤, 제이는 스프레드시트의 캡테이블을 열었습니다. 창업자 세 사람의 주식 수는 그대로였습니다. 새로 발행된 주식은 없었습니다. 제이는 그러면 지분은 아직 안 나간 것이냐고 물었고, 변호사는 주식은 안 나갔고 지분은 나갔다고 답했습니다.
8%는 어디에 있는가
두 엔젤이 서명한 것은 포스트머니 SAFE(Post-money SAFE)였습니다. 2018년부터 표준이 된 양식이고, 핵심은 투자자의 지분율이 서명하는 날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투자금을 캡으로 나누면 됩니다. 25만 달러를 500만으로 나누면 5%, 15만 달러를 500만으로 나누면 3%. 합쳐서 8%. 다음 라운드의 회사 가치가 캡보다 높으면 투자자는 캡 가격으로 전환하고 이 비율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캡보다 낮으면 그 낮은 가격으로 전환하니 비율은 8%보다 커집니다. 캡은 투자자 지분율의 바닥이지 천장이 아닙니다.
캡테이블에 주식이 없는 이유는 아직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8%가 이미 나간 이유는 발행할 주식 수가 아니라 최소 비율이 약속됐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는 캡테이블에 줄을 하나 추가하라고 했습니다. "SAFE 전환 예정, 8%." 주식 수 칸은 비워두고.
제이가 그 줄을 추가하고 나서 물은 것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다음 달에 SAFE를 더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에밀리는 이미 다음 엔젤 세 사람과 이야기 중이었고, 합치면 60만 달러였습니다.
변호사가 설명한 것은 포스트머니 SAFE의 두 번째 성질이었습니다. 새 SAFE가 들어와도 먼저 들어온 SAFE 투자자의 비율은 줄지 않습니다. 5%는 5%이고 3%는 3%입니다. 그러면 새 SAFE의 비율은 누구에게서 나오는가. 창업자에게서만 나옵니다. 60만 달러를 캡 600만에 받으면 10%가 추가되고, SAFE 투자자들은 합쳐서 18%, 창업자 세 사람은 82%입니다. 그 뒤에 시리즈 A가 20%를 가져가고 옵션풀 10%를 만들면, 제이의 스프레드시트에서 창업자 셋의 합은 50%대로 내려옵니다. 투자 라운드를 한 번도 "제대로" 열지 않았는데.
마커스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SAFE를 받을 때마다 우리만 희석되는 거네요. 변호사는 그렇다고 했고, 그것이 포스트머니 SAFE가 투자자에게 좋은 이유이자 창업자가 SAFE를 "작은 돈"으로 여기면 안 되는 이유라고 했습니다. 예전 양식인 프리머니 SAFE에서는 SAFE끼리 서로 희석했기 때문에 투자자가 자기 지분율을 서명 시점에 알 수 없었고, 그 불확실성을 없애려고 투자자 쪽에서 양식을 바꾼 것입니다. 명확해진 대가를 창업자가 냅니다.
세 사람은 그날 숫자를 하나 정했습니다. 시리즈 A 전까지 SAFE로 받는 돈은 합쳐서 60만 달러까지. 에밀리는 다음 엔젤 세 사람 중 두 사람에게 금액을 줄여달라고 말해야 했습니다.
편지 두 통
25만 달러를 넣은 투자자는 서명 전에 서류를 하나 더 요구했습니다. 프로라타 사이드레터(Pro Rata Side Letter). 다음 라운드에서 자기 지분율만큼 추가 투자할 권리입니다. SAFE 표준 서식에서는 이 권리가 빠져 있어서 별도 편지로 받습니다. 변호사는 이 편지가 흔하고 무해하다고 했습니다. 다만 시리즈 A 투자자가 들어올 때 "그 엔젤이 참여하면 내 몫이 준다"고 할 수 있으니, 그때 가서 조정할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만 적어두라고 했습니다.
15만 달러를 넣은 투자자는 최혜국 대우(MFN) 조항을 요구했습니다. 나중에 더 낮은 캡으로 SAFE를 발행하면 자기 캡도 그 숫자로 내려달라는 것. 변호사는 이 조항을 받으면 앞으로 캡을 낮출 자유가 사실상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캡 400만에 돈을 받아야 하는 날이 오면, 이 투자자의 3%도 자동으로 3.75%가 되기 때문입니다. 에밀리는 그 조항 대신 캡을 480만으로 조금 낮춰주는 것으로 협상을 끝냈습니다. 3%가 3.125%가 됐고, 제이는 그 숫자를 스프레드시트에 고쳐 넣었습니다.
한국이었다면
제이는 이 서류를 한국에서 받을 수 있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벤처투자법에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이라는 이름으로 SAFE에 해당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투자금을 먼저 받고 후속 투자의 기업가치에 연동해 지분이 확정되는 계약. 다만 조건이 붙습니다. 회사가 계약 당사자가 되고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을 것, 그리고 그 뒤에 자본이 바뀌는 계약을 맺을 때마다 상대방에게 이 계약이 있다는 사실을 문서로 알릴 것.
ATTJ컴퍼니의 주주는 창업자 셋뿐이라 전원 동의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이가 멈춘 것은 그 조건이 있다는 사실 자체였습니다. 미국에서 SAFE는 이사회 결의와 서명으로 끝나는 계약이고, 한국에서 같은 계약은 주주총회급 동의와 고지 의무가 붙는 제도입니다. 같은 서류가 한쪽에서는 서랍에서 꺼내 쓰는 양식이고 다른 쪽에서는 법이 요건을 정한 제도인 것. 제이는 그 차이가 왜 한국 시드 투자에서 SAFE가 흔하지 않은지를 설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프레드시트의 캡테이블에는 이제 주식 수가 비어 있는 줄이 두 개 있었습니다. 그 줄의 주식 수가 채워지는 날은 시리즈 A 클로징 날이고, 그날 제이는 이 줄들을 다시 계산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이렇게 나타납니다
포스트머니 SAFE는 투자자의 지분율을 투자금을 포스트머니 밸류에이션 캡으로 나눈 값으로 서명 시점에 확정하며, 이후 발행되는 SAFE는 기존 SAFE 투자자가 아니라 기존 주주(대부분 창업자)만 희석합니다. 복수의 SAFE가 쌓인 뒤 가격 라운드가 열리면 전환 주식 수는 "회사 자본(Company Capitalization)"을 SAFE 비율의 합으로 역산해 정하는데, 캡 500만 달러에 40만 달러를 받은 회사가 시리즈 A에서 20%를 발행하고 옵션풀 10%를 만들면 창업자 지분은 한 번의 가격 라운드만으로 50%대까지 내려올 수 있습니다.
한국 벤처투자법 제2조 제1호 라목은 "투자금액의 상환만기일이 없고 이자가 발생하지 아니하는 계약"인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투자의 한 유형으로 정하고, 시행규칙 제3조는 그 요건으로 후속 투자의 기업가치와 연동한 지분 확정, 회사의 당사자 지위와 주주 전원 동의, 이후 자본 변동 계약 상대방에 대한 문서 고지를 요구합니다.
더 깊이 보려면
- 한국 전환사채 vs 미국 SAFE (I): 같은 '전환'이지만 전혀 다른 구조 — 포스트머니 SAFE의 지분율 계산과 복수 SAFE의 희석 누적
- 한국 전환사채 vs 미국 SAFE (II): SAFE 전환의 실제, 회계 처리, 그리고 Simple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 — 전환 시 받는 우선주(Shadow Series)와 표준 조항을 바꿨을 때의 문제
다음 화는 첫 직원입니다. 마커스가 데려온 엔지니어에게 세 사람은 스톡옵션을 주기로 했고, 행사가를 얼마로 적을지를 정하는 데 변호사가 "그 숫자는 여러분이 정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연재의 회사·펀드·인물은 가상이며, 실존 회사·인물·사건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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